서울고법 "소비자 선택권 침해"…1심 패소 뒤집어

서울 강남 애플 가로수길 매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
서울 강남 애플 가로수길 매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

[미래경제 김정희 기자] 애플이 아이폰 운영체제(iOS)를 업데이트하면서 기기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내 이용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내 2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서울고법 민사12-3부(박형준 윤종구 권순형 부장판사)는 6일 아이폰 이용자 7명이 애플코리아 등을 상대로 20만원씩 달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애플이 각자에게 7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6만여명이 소송에 참여해 1심에서 모두 패했는데 이들 중 7명만 항소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재판부는 애플이 운영체제 업데이트에 관한 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아 이용자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업데이트 설치의 결과나 영향에 관해선 프로그램을 개발한 애플과 소비자 사이에 상당한 정보 불균형이 있다"며 "소비자들은 업데이트가 기기 성능을 개선한다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고 업데이트가 기기 프로세서 칩의 최대 성능을 제한하거나 앱 실행을 지연시키는 현상을 수반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업데이트가 비록 전원 꺼짐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 하더라도 그 방식이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을 일부 제한하는 이상 애플은 자사를 신뢰해 아이폰을 산 이들이 업데이트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애플이 이런 중요 사항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소비자들은 업데이트 설치에 관한 선택권 또는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기회를 상실했다"며 "소비자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운영체제 업데이트가 기기를 훼손하거나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이용자가 재산상 손해를 보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1심은 아이폰의 성능조절기능이 반드시 사용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소비자들은 1심에서도 애플이 고지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업데이트를 유해하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선고 직후 애플은 입장문을 내 "애플은 고객의 제품 업그레이드를 유도할 목적으로 제품 사용 경험을 의도적으로 저하시키거나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킨 적이 결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객이 아이폰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애플의 목표 달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은 2017년 12월 국내외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부 이용자가 아이폰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한 뒤 성능이 눈에 띄게 저하됐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아이폰의 속도가 느려지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신형 아이폰으로 교체할 것을 노리고 애플이 매출 증대를 위해 고의로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논란이 확산하자 애플은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면 스마트폰이 갑자기 꺼질 수 있어 속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전력 소모량을 줄였다며 사실상 성능 저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후 전 세계에서 애플을 상대로 한 소송이 잇따랐다. 국내 이용자들도 2018년 3월 1인당 2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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