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만에 역사속으로…사회 혼란 방지로 2020년까지 법개정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뉴스1)

[미래경제 김정희 기자] 헌법재판소가 낙태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규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53년 낙태죄가 형법에 규정된지 66년 만에 위헌 결정이 나오면서 낙태죄 처벌조항인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는 사라지게 됐다.

앞서 헌재가 2012년 8월 23일 재판관 4대4 의견으로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 자기결정권에 우선한다는 취지로 합헌 결정을 내린지 7년 만에 뒤집힌 결과다. 위헌 결정엔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필요하다.

헌재는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1항(자기낙태죄)과 낙태시술을 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동법 270조1항(의사낙태죄)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정모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헌법소원이 청구된지 2년2개월만이다.

다만 해당 법조항을 즉각 무효화하면 제도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법을 개정하라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시한이 만료되면 낙태죄의 법률 효력은 사라진다.

유남석·서기석·이선애·이영진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에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 예외를 제외하곤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어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는 “자기낙태죄가 위헌이므로 동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임신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임신 14주까진 조건없는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며 “그간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었고 그 경우도 악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상당수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 조항이 폐기된다고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이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위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사진=뉴스1)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며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임신한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지만 합헌 정족수(4명)에 미치지 못했다.

조·이 재판관은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 선고의 길이 열려 있어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태아 생명보호 업무 종사자가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시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 또한 크다”며 위헌이 아니라고 봤다.

앞서 2013년 11월~2015년 7월 69회에 걸쳐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인 정씨는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헌법상 행복추구권,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의 이번 위헌 결정은 헌법소원을 낸 정씨를 비롯해 낙태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법원이 헌재의 결정 취지를 따를 경우 무죄 선고가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이 사건 주심인 조용호 재판관은 이날 선고를 마지막으로 서기석 재판관과 함께 이달 18일 퇴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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