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배상안과 기준안의 각 배상 범위와 수준 격차 보일 가능성 커

홍콩의 한 증권사 전광판의 모습. [자료사진=홍콩EPA / 연합뉴스] ⓜ
홍콩의 한 증권사 전광판의 모습. [자료사진=홍콩EPA / 연합뉴스] ⓜ

[미래경제 김대희 기자] 작년 연말부터 큰 우려를 불러온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흐름과 연동된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규모가 올해 들어 불과 한 달여 만에 5000억원을 넘어서 현실로 다가왔다.

이처럼 피해가 커지자 은행 등 판매 금융기관에 ‘배상안’ 또는 ‘책임 분담안’을 요구하는 투자자와 금융 당국의 압박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은행권도 법무법인들과 배상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결국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위반 사례를 얼마나 폭넓게 인정할지에 따라 배상 범위나 수준이 결정될 전망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가운데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모두 9733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고객이 돌려받은 돈(상환액)은 4512억원뿐으로 평균 손실률이 53.6%(손실액 5221억원/원금 9733억원)에 이른다.

특히 H지수가 5000 아래로 떨어진 지난달 하순 만기를 맞은 일부 상품의 손실률(58.2%)은 거의 60% 수준이다. 9일 현재 H지수(5306) 역시 2021년 당시 고점(약 1만2000)의 절반 가량이다.

올해 전체 15조4000억원,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의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H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하지 못하고 현재 흐름을 유지하면 전체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수 있다.

지난 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설 연휴 전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유형화, 체계화하고 이후 이달 마지막 주까지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점검하거나 추가 검사에서 문제점을 발굴해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지난해 말 이후 주요 금융사를 상대로 현장 검사를 통해 ESL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살펴왔는데 금감원 검사국뿐 아니라 분쟁조정국 관계자들이 은행 판매 직원, 실제 가입 고객을 상대로 두루 판매 과정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들이 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할 수 있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본다며 금융사 자율 배상안도 주문했다.

앞서 과거 DLF(파생결합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 당시 당국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불완전 판매 여부를 판단하고 배상 기준을 제시할 때 불완전 판매 유형을 크게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부당 권유로 분류한 바 있다.

각 피해 주장 사례가 세 가지 유형에 어느 정도 해당하는지 점수를 매겨 높을수록 많은 배상을 결정했다.

금융감독 용어 사전에 따르면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가 파악한 투자자 특성(투자목적·재산상태·투자경험 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할 의무 또는 부적합한 투자 권유 금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감독 규정은 금융사가 투자자의 거래목적, 금융상품 이해도, 재산 상황, 투자성 상품 취득·처분 경험, 연령 등을 기준으로 투자 적합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가령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사가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거나 “예금과 똑같다”며 가입을 유도했다면 설명의무 위반이나 부당 권유 유형의 불완전 판매다.

은행권은 이번에 당국이 조만간 내놓을 ELS 책임 분담 기준안이 ‘고령자 상대 적합성 원칙 위반 사례의 경우 손실의 몇 % 금융사 분담(배상)’ ‘최초 ELS 상품 가입자에 대한 적합성·설명의무 위반 사례의 경우 손실의 몇 % 금융사 분담’ 등의 형태로 제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이 당국 기준안 전후로 내놓을 ‘자율 배상안’과 향후 배상 과정에서 ELS 판매 과정상 적합성 위반을 당국이나 투자자들의 기대만큼 많이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결국 적합성 원칙 위반 여부를 놓고 “투자자의 성향을 여러 차례 확인했고 본인 서명과 녹취 등의 증빙도 있다”는 은행과 “투자성향 확인 절차 등이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당국의 시각 차이에 따라 자율 배상안과 기준안의 각 배상 범위와 수준은 격차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에서는 당국이 아직 기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은행이 자율 배상안을 먼저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적합성 원칙 위반 여부는 논란이 클 수 있어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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