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 최소 득표차 0.73%p 기록…검찰총장 출신의 첫 ‘장외 0선’ 대통령 탄생
[미래경제 김정희 기자] 지난 9일 실시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초박빙 끝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당선을 확정지었다.
윤 당선인은 10일 오전 100% 개표를 완료한 가운데 48.56%, 1639만여표를 얻어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7.83%, 1614만여표를 얻었다. 득표차는 0.73%포인트, 24만7000여 표에 불과하다. 두 후보 간 격차는 무효표 30만7000여표보다 적어 초접전을 보였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37%, 80만3000여표를 기록했다.
앞서 개표 중반까지 이 후보가 우세한 흐름을 보였지만 개표율 51% 시점에 윤 후보가 처음으로 역전하면서 0.6~1.0%포인트의 격차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개표율 95%를 넘어설 때까지도 당선인을 확정 짓지 못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후보 확정이 확실시 되면서 이 후보는 오전 3시 50분께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선을 다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윤석열 후보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며 패배를 선언했다.
곧바로 윤 당선인은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당 개표상황실이 차려진 국회 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 신분에서 새 정부를 준비하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선기간 줄곧 두문불출했던 배우자 김건희씨는 이날도 함께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헌정사상 최소 득표 차를 기록한 신승이다. 1∼2위 후보 간 격차가 가장 작았던 선거는 1997년의 15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40.27%의 득표율로 38.74%를 얻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로 신승을 거뒀다. 표차는 39만557표, 득표율 차는 1.53%포인트였다.
두 번째로 격차가 작았던 선거는 1963년 5대 대선으로 당시 박정희 민주공화당 후보가 윤보선 민정당 후보를 1.55%포인트 격차로 눌렀다.
이번 대선이 유력한 제3후보가 없는 가운데 사실상 보수와 진보의 일대일 구도로 치러지면서 진영결집이 극대화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이념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젠더 갈등까지 사회갈등의 골을 깊어진 것은 새 정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극심한 여소야대 의회지형 속에서 ‘협치’와 ‘통합’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민심이 표출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궤멸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보수진영으로선 이번 대선으로 5년 만에 정권을 잡게됐다. 이로써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로 보수와 민주 진영이 10년씩 번갈아 집권했던 ‘10년 주기론’은 깨지게 됐다.
윤 당선인 본인으로서는 ‘장외 0선’ 출신으로서 처음으로 대권을 거머쥐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작년 6월 29일 정권교체를 기치로 내걸고 정치참여를 공식화하며 대선도전을 선언한 지 불과 8개월 만이다.
앞선 13∼19대 전·현직 대통령들이 국회의원직을 최소 1차례 이상 경험했고 대부분 당대표까지 역임하며 여의도 정치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은 것과 달리 의회정치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파격 발탁된 ‘엘리트 검사’로 되레 정권교체의 기수 역할을 맡은 것도 역설적이다.
무엇보다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범한 진보정권을 교체하면서 정치·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분야에 걸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코로나19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촉발된 경제·안보 위기 상황 속에서 새 대통령 당선인이 맞닥뜨린 도전과제 또한 부담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윤 당선인은 10일 오전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당선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