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제팀 김금영 기자
산업경제팀 김금영 기자

[미래경제 김금영 기자]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했더니 몇 년 전 대림미술관에서 봤던 하이메 아욘 작가의 작품이었다. 또 다른 공간에선 잠실 석촌호수에 거대 조형물로 떠올라 화제가 됐던 카우스 작가의 작품을 마주했다.

두 작품을 만난 곳은 갤러리, 미술관이 아닌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이하 스페이스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었다.

거대한 쇼핑공간에서 눈에 띄고, 기억에 남은 것이 비싼 옷이나 신발이 가득한 명품 매장이 아닌 예술 작품이라니,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 백화점에 작품이 전시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닐뿐더러 아주 특별한 일도 아니다. 다만 과거엔 백화점 내부에 따로 공간을 할애해 갤러리로 꾸며 단기간 기획전으로 선보이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백화점 본연의 물건 판매에 집중하고 예술 등 다른 요소는 이벤트성의 부수적인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하이메 아욘의 작품은 정원, 어린이 도서관, 놀이터 공간까지 스페이스원의 거의 한 층을 할애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도 명품 매장 사이 곳곳부터 고객이 쉴 수 있는 라운지까지, 매장 못지않게 작품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백화점이 코로나19 시대에 변화하고 있다. 명품 매장을 1층에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매장=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일차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작품을 감상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더현대 서울’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 서울의 주요 콘셉트를 도심 속 자연주의, 즉 ‘리테일 테라피(쇼핑을 통한 힐링)’ 개념을 적용한 미래 백화점이라 칭했다. 눈에 띄는 특징은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 면적을 줄이고 고객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늘렸다는 것이다.

전체 영업 면적(8만 9100㎡) 가운데 매장 면적(4만 5527㎡)이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나머지 절반가량의 공간(49%)을 실내 조경이나 고객 휴식 공간 등으로 꾸몄다.

1층엔 12m 높이의 인공 폭포를 조성하고 5층엔 실내 녹색 공원 ‘사운즈 포레스트’를 꾸려 천연 잔디에 30여 그루의 나무와 다양한 꽃들을 들였다.

사운즈 포레스트를 중심으로 5층과 6층에 문화·예술과 여가생활 그리고 식사 등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컬처 테마파크’를 조성해 200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 정도 되면 명품 매장 유치 및 상품 판매가 오히려 부수적인 요소가 된 느낌이다.

이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며 맞게 된 변화로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집밖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비 패턴의 흐름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중심으로 흘렀다.

최근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시민 카드 소비액을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온라인 소비는 약 3조 9000억원(18.4%)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 소비는 약 7조 4000억원(7.5%) 감소했다,

오프라인에서도 멀리 발품을 팔기보다는 근처 가까운 편의점을 택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최근 발표된 산업통상자원부의 ‘2020년 연간 매출 동향’에 따르면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매출은 편의점 3사(GS25‧CU‧세븐일레븐)에도 밀리는 굴욕을 맛봤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명품 매장으로 치장하고, 상품 판매만 중점으로 내세운 백화점의 마케팅은 더 이상 소비자에게 이전만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백화점 업계가 돌파구로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 미래형 백화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쇼핑채널에서는 한계가 있는 문화생활 체험 및 힐링 등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내세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소비자의 니즈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모노리서치를 통해 진행한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제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읽힌다.

최근 1년 내 복합쇼핑몰을 방문한 만 18세 이상 수도권 거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 결과에서 복합쇼핑몰을 방문하는 이유로 ‘의류 등 쇼핑’(34.0%) 못지않게 ‘외식 또는 문화·오락·여가’(26.4%)가 많이 꼽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 또한 “더 현대서울이 공원을 산책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힐링 명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더현대 서울을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선 성공의 예시가 있다. 신세계는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총 면적 2800m²에 달하는 넓은 공간에 별마당 도서관을 만들었다.

당시 명품 매장을 더 들여도 모자랄 판에 위축된 상권을 더 위축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2017년 별마당 도서관 개관 이후 1년 차엔 약 2100만 명, 2년 차엔 약 2400만 명 이상이 코엑스몰을 찾으며 우려의 시선을 뒤집었다. 

스타필드 코엑스점에 따르면 별마당 도서관이 들어선 이후 코엑스몰에 입점한 매장들의 일평균 방문객 수는 5% 증가했으며, 특히 별마당 도서관에 인접한 상점들이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과 미술, 문화 강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별마당 도서관에 꾸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아직은 소위 ‘오픈빨’(개점 초기 매장에 손님이 몰려드는 현상)이 있기도 하지만 더현대 서울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오늘(26일) 본격 오픈에 앞서 진행된 24~25일 프리 오픈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풍경이 이어졌다.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스타필드 같다” “가족과 여가시간을 보내기 좋은 것 같다” 등의 현장 반응도 이어졌다. 코로나19로 집콕하며 억눌려 있던 답답함을 오프라인에서 풀며 소비 효과도 점차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여타 업계와 비교해 다소 보수적인 백화점 업계는 명품 매장을 잔뜩 늘여놓는 위주의 콧대 높은 전략을 펼쳐 왔었다. 하지만 이제 넋 놓고 과거의 영광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과 소비자의 니즈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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