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나눈 대화록이 전격 공개됐다.

국가정보원이 24일 기밀해제 관련 심의위원회를 열고, 남재준 국정원장의 재가를 거쳐 기존 2급 기밀인 대화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해제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에게 8쪽짜리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부분'과 103쪽짜리 전문을 전달했다. 공개된 발췌록에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해 주한미군, 대미관계, 대일관계, 북핵 문제 등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주로 담겼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정보위원들은 발언록의 조작·왜곡 우려를 제기하면서 전문과 발췌본 전달을 거부했다. 특히 민주당은 회의록 공개는 '쿠데타 또는 내란에 해당하는 항명'에 해당하는 만큼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전문 공개와 위법 여부, 발언 해석 등을 놓고 공방이 예상된다.

◇ 'NLL 포기' 발언 명시 안 돼

발췌록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NLL 문제가 남북문제에 있어서 나는 제일 큰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며 장성급 회담에서 북측이 NLL 문제를 의제로 제시한 것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식을 같이 한다"며 "NLL은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은 발췌록을 열람한 직후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발췌록에서 노 전 대통령은 '포기'라는 표현은 없었다.

대신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필요한 실무협의를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된다"고 말한 대목 등을 꼽으면서 'NLL 무효화'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노 전 대통령이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가 절대 아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한 대목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NLL 포기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직접적인 'NLL 포기' 발언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어 해석을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국정원이 악의적으로 발췌, 공개한 내용에 의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말은 없고 오히려 NLL을 함부로 못건드린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NLL과 무관한 부분을 잔뜩 공개했다"고 반박했다.

◇ "보고 드린다" 표현 없어…해석 모호

새누리당은 발췌록 열람 이후 노 전 대통령이 김 국방위원장에 '보고드린다'는 표현을 쓴 데 대해 "비굴과 굴욕이 난무한 협상"이라고 격앙했다. 하지만 발췌본에는 '보고드린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6자 회담과 관련해 "6자 회담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전에 상세하게 보고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남측에서 이번에 가서 핵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오라는 주문이 많은데 그것은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원문이 아닌 발췌록만 보면 북한이 보고했는지, 우리가 보고했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북한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6자 회담에 관한 입장을 보고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盧 "BDA 문제는 美 실책인데 北에 손가락질"

발췌본에는 NLL과 무관한 내용들도 대거 공개됐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제재(2005년)에 대해 "미국의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실책임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돈을 받으라하니까 어느 은행도 안 받겠다 하는 것이 아니냐"며 "BDA 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에 풀라고 한다. 부당하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고 공감했다.

특히 그는 "제일 큰 문제가 미국"이라며 "(미국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역사에 반성도 하지 않고, 오늘날도 패권적 야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측 국민들에게 여론조사를 했는데 제일 미운 나라가 어디냐고 했을 때 그 중에 미국이 상당 숫자가 나온다"며 "동북아시아에서 앞으로 평화를 해롭게 할 국가가 어디냐, 평화를 깰 수 있는 국가가 어디냐 했을 때 미국이 1번으로 나오고, 그 다음은 일본, 북측을 지목했다"고 설명했다.

◇ 盧 "수도 한복판에 외국 군대? 체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60억 달러가 들고, 100억 달러가 들어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대가 있는 것은 나라 체면이 아니다"며 "너희들 뭐하냐고 보지 말고, 점진적으로 달라지고 있구나라고 보면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유사시 작전 계획을 담은 '작계 5029'에 대해서는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한테 가는데...그건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느냐"며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했는데 이제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납치 문제가 있어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없고, 나도 일본측의 주장을 들어봤지만 잘 못알아듣겠다"며 "호주 사람이 쓴 아주 잘 분석된 책을 봐도 일본이 생트집 잡고 있다고 써놓은 책도 있고 한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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