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좌)-이완구 국무총리(우).(사진=뉴스1)

2013년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복귀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완구 국무총리의 운명이 2년 만에 얄궂게 엇갈려 새삼 이목을 끈다.

두 사람은 모두 정치적 휴지기를 갖다가 4·24 재보선으로 화려하게 여의도 정치권에 복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당 지도부를 장악했다.

박근혜 대통령 배출 이후 독보적인 차기 대선주자가 없던 새누리당에서는 김 대표와 이 총리가 건강한 경쟁을 통해 차기 주자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관측이 컸다.

그러나 4·24 재보선 이후 딱 2년이 된 24일. 김 대표는 승승장구 하고 있는 반면 이 총리는 직까지 내려놓고 두문불출하는 정치인생 최악의 위기에 빠져 있다.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김 대표와 이 총리는 묘하게도 닮아있었고, 이들의 '귀환'은 여권의 역학구도 변화를 예고했다.

친박(박근혜)계 원조였다가 탈박(脫朴), 복박(復朴)을 거듭했던 김 대표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친박계로부터 공천배제를 당했다며 반발하면서도 '백의종군'을 선언, 당내 후폭풍을 잠재웠었다.

그해 말 치러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서 선거를 진두지휘해 승리를 이끌었던 김 대표는 대선 후 "어떤 직도 맡지 않겠다"며 선언하고 해외여행을 다녔다.

잠시 '정치낭인'을 자처했던 김 대표는 지역구를 옮겨 부산 영도구에서 4·24 재보선에 당선했다. 5선 중진 거물 정치인이 복귀하자 "차기 당 대표에 도전할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다.

김 대표는 복귀 후 당내 대규모 모임을 결성하는 등 외연을 확장한 끝에 지난해 7·14 전당대회에서 압승하며 집권여당 대표 고지에 올랐다.

이 총리의 '드라마' 역시 김 대표 못지 않았다. 이 총리의 4·24 재보선 당선은 '포스트 JP', '신 충청권 맹주' 탄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총리는 충남지사였을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해 도지사직을 내던진 이후 건강상 이유로 정치권에 다소 거리를 뒀었다.

이 총리는 4·24 재보선 당선으로 선수는 3선이지만 정치 입문 시기와 경륜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5선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총리는 당선 후 원내대표를 염두에 두고 치열한 사전 정지작업을 한 끝에 2014년 5월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올랐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정국이 대혼돈에 빠졌을 당시 원내대표로 추대됐던 이 총리는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6·4 지방선거와 7·14 전당대회를 무난히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한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원칙"을 강조하며 여야 합의를 이끌어냈고, 새해 예산안을 12년 만에 법정 시한 내에 통과시키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재보선 동기'인 김 대표와 이 총리의 관계는 원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월호 참사 정국을 수습하며 두 사람은 때론 다소 대립하며 때론 화합하며 각별한 호흡을 맞췄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인한 혼돈 정국 속에서 김 대표의 '선명한' 역할이 더욱 조명을 받고 있으며 여권 차기 대선주자 1위 자리를 공고하게 지키고 있다. 김무성 대세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 총리가 원내대표에 이어 총리에까지 지명되자 그에 대해 "뚝심의 리더십" 등이라는 호평이 나왔다. 김 대표는 이 총리를 "최고의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언론외압 및 신상논란으로 한번 상처를 입었다.

상처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이 총리는 취임 직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책임총리를 자처하며 강(强)드라이브를 걸었지만 60여일 만에 정치인생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부패척결 담화' 이후 사정당국의 1순위 타깃이 된 경남기업의 고(故) 성완종 전 의원이 자살 전 남긴 리스트에 이 총리의 이름이 올랐다.

이 총리의 정치권 복귀 무대였던 4·24 부여청양 재선거 때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했다는 의혹과 거짓말 논란은 이 총리를 자진사퇴로까지 몰아넣었다.

이 총리의 자진사퇴는 '동기'인 김 대표 등 여당 지도부가 사실상 본인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것으로 전해진 직후 이뤄졌다.

이처럼 엇갈리는 두 사람의 운명을 보고 당 안팎에서는 김 대표와 이 총리가 가졌던 '동기모임'을 이야기한다.

4·24 재보선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동기인 김 대표와 이 총리,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는 그해 6월 '동기모임'을 가졌다.

당시 세 사람은 "순수한 모임"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지만 경제부터 국가 변혁 패러다임까지 '큰'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이후 동기모임이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극한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김 대표, 이 총리(당시 원내대표), 안 전 대표(당시 공동대표)는 여야 지도부 회동으로 다시 마주앉기도 했다.

당초 재보선 동기 세 사람 모두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 차기 대선에서 맞붙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7·30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대선주자군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지지율이 예전같지 않다. 지난 대선 때와 같은 '안철수 신드롬'은 옛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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