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원칙적 방법 따라 주식가액 산정”
공정위 600억원대 과징금도 취소 판결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미래경제 김석 기자]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를 풀은 SPC그룹이 허영인 회장의 1심 재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리스크를 한시름 덜게 됐다. 앞서 허 회장은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는 지난 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허 회장과 조상호 전 SPC그룹 총괄사장, 황재복 SPC 대표이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칙적 방법에 따라 양도주식 가액을 정한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피고인들에게 배임의 고의가 인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허 회장 등이 2012년 12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삼립에 매도하면서 밀다원의 미래 잠재적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팔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곡물 가공업 특성상 지속적인 성장을 예상하기 어렵고 미래 가치를 주식 가치에 반영하는 것은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중대한 문제점도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SPC그룹이 일반적인 비상장주식 거래와 마찬가지로 과거 3년간의 순손익을 기준으로 원칙적인 주식 가치 평가 방법을 채택한 것일 뿐 그 평가 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거나 실무 담당자들이 회계법인의 평가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아울러 재판부는 허 회장 등이 2012년 1월 신설된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를 회피할 목적으로 주식을 저가양도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는 지배주주에게 특수관계 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을 증여로 보고 과세하는 것인다.

이는 편법적 지배구조에 따라 얻게 될 이익을 증여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일 뿐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편법적 지배구조를 자발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에서 주식 양도 가액을 어떻게 산정하는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 특성상 증여세가 부과될 경우 일감 몰아주기를 일삼는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었던 점에 비춰볼 때도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피고인들이 당시 새로 도입된 제도에 대응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주식의 양도가액이 저가인지 고가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허 회장 일가가 주식매매 당시 파리크라상과 샤니 주식을 사실상 전부 보유하고 있어 궁극적으로 손실을 자신이 모두 입게 됐다고 판단했다.

허 회장 등은 2012년 12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취득가(2008년 3038원)나 직전 연도 평가액(1180원)보다 현저히 낮은 255원에 삼립에 판 혐의를 받았는데 검찰이 판단한 적정가액은 1595원이다.

이를 통해 샤니와 파리크라상은 각각 58억1000만원, 121억6000만원의 손해를 본 반면 삼립은 179억7000만원의 이익을 봤다고 검찰은 파악했다.

이번 선고 직후 SPC는 입장문을 통해 “오해와 억울함을 풀어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며 “SPC그룹은 국내는 물론 해외 글로벌 사업을 통해서도 식품기업으로서 바른 경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검찰은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도 이날 입장을 내고 “피고인들이 저가에 양도한 밀다원의 주당 가격이 평가액보다 현저히 낮은 점, 이사회 결의없이 주식양도가 결정되고 실행된 점, 회장 일가의 증여세 회피 목적으로 양도한 점 등을 고려하면 1심 판결은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에 오류가 있다”며 “이를 바로잡고자 항소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SPC 본사 전경.[사진=연합뉴스] ⓜ
SPC 본사 전경.[사진=연합뉴스] ⓜ

한편 이에 앞서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SPC그룹에 부과한 600억원대 과징금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단도 있었다.

지난달 31일 서울고법 행정6-2부(위광하 홍성욱 황의동 부장판사)는 SPC삼립(이하 삼립) 등 SPC그룹 계열사 5곳이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 등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647억원을 전액 취소할 것을 명령했다.

아울러 SPC의 제빵 계열사들이 생산 계열사 제품을 구매할 때 삼립을 통하게 해 부당 지원한 행위, 일부 계열사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삼립에 저가에 양도한 행위 등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SPC 그룹 차원에서 삼립에 ‘통행세’를 몰아줘 부당 지원했다는 공정위 판단에 대해 재판부는 “거래에서 삼립의 실질적 역할이 없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은 만큼 부당지원행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2020년 7월 SPC가 총수 일가의 개입 하에 2011년 4월∼2019년 4월 그룹 내 부당 지원을 통해 삼립에 총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몰아줬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엔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삼립의 주가를 높여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는 이에 계열사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허영인 SPC그룹 회장, 황재복 대표이사 등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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