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희 산업경제팀 차장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나라의 사회적 병폐를 단면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흔히 재벌가 총수들 뿐 아니라 소위,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회사 돈을 떼어 먹거나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 이를 돈으로 해결해 사태를 모면하는 경우를 말한다.

최근에는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이 ‘3·5법칙’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또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 ‘3·5법칙’이란 말은 재벌 총수들이 어떤 큰 죄를 저지르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관행처럼 선고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형 집행이 5년 동안 유예되니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은 셈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비단 우리나라에게만 존재해온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중국이 있으며 멀리는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있어 왔다. 바로 면죄부다.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만 후진국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다행(?)스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김승연 회장이 ‘3·5법칙’으로 면죄부를 받은 것이 관행이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을까. 아니다.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돈이다. 만민에게 평등해야 할 법이 자본 앞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 ‘3·5법칙’으로 재벌 총수들이 풀려나자 대법원은 법관 마음대로 형량을 좌지우지 하지 못하도록 양형기준표를 만들었다. 이 기준은 배임액수가 300억원 이상이면 감경요소가 있더라도 징역 4~7년을 내리도록 했다.

이 양형기준표대로라면 김 회장의 배임액은 1500억원 이상으로 최소한 징역 4년에서 최대 7년까지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김 회장이 집행유예 5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피해액 전부를 공탁했다는 점이 재판부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다.

이를 직시하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횡령해도 갚을 능력만 있다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 것이다.

회사돈을 횡령했을 경우 들키지 않으면 가장 좋은 것이지만 들켰다 손 치더라도 돈으로 때우면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판결로 공표한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칙을 온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줬을 뿐이다.

돈 이야기 하면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란 책이 떠오른다. 이 책의 핵심은 현재 시장(돈)이 도덕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며 대체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많을수록 좋지 못하다는 쪽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샌델은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가 꼭 완벽히 평등할 필요는 없다고. 그러나 돈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면 빈부격차는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센델의 말처럼 민주주의를 좀 먹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말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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