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운용위,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의결…재계 집단 반발 지속
[미래경제 한우영 기자] 앞으로 국민연금이 횡령 및 배임 혐의가 밝혀진 기업에 대해 이사해임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27일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기금위는 위원장인 박능후 복지부 장관과 정부 인사 5명, 사용자 단체와 가입자 단체 등에서 추천한 인사 14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회의에는 일부 사용자 단체 대표들이 가이드라인이 기업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등 기업 길들이기 목적이 있다고 반발하며 불참했다.
이에 따라 이날 기금위의 의결은 위원들 간의 합의가 아닌 표결방식으로 이뤄졌다.
가이드라인은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이사해임, 정관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금위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년간 장기간에 걸쳐 주주권행사 관련 논의를 해온 만큼 가이드라인의 전반적인 내용을 의결했다"며 "완벽하진 않지만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언제든 시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의결된 가이드라인에는 경영계 입장을 반영해 주주제안을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추가됐다.
박 장관은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측면에서 주주제안 자체를 철회할 수 있다는 추가 단서조항을 넣었다"며 "이를테면 주주 제안 대상에 오른 기업이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산업계 전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행사로 산업계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으면 주주 제안을 아예 하지 않거나 철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의결 과정에서는 주주활동 대상인 '중점관리사안',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 항목도 변경됐다.
기존에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에 해당하던 '기금운용본부의 정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2등급 이상 하락해 C등급 이하를 받은 경우'는 '중점관리사안'으로 분류됐다. 기금운용본부의 ESG 등급을 사전에 알 수 없어 대응이 어렵다는 경영계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다만 ESG 평가방식이나 내용이 확정이 안 된 상태여서,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1년 이후에 시행할 예정이다.
또 시민단체 측 입장을 반영해 1년으로 설정된 수탁자책임활동 기간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나 기금위가 필요하다고 한 때에는 단축하거나 바로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밖에 기금위는 가이드라인에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목적은 장기수익 및 주주가치 제고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주주 활동 대상을 선정할 때 해당 기업의 산업적 특성과 기업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박 장관은 가이드라인 마련 목적이 '기업 길들이기'가 아닌 장기수익 및 주주가치 제고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의 반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단체들은 27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데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금운용위 결정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보건복지부가 경영계의 거듭된 우려 표명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 경영개입 목적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 도입을 의결했다"며 "실물경제가 부진한 상황인 데다 국가적 시급성이 없는 사안임에도 무리하게 의결을 강행해 극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전경련도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과 지배구조 간섭이 늘면 신산업 진출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결국 우리 경제의 활력도 잃게 될 것"이라며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오늘 통과된 가이드라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