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반도체 경기 대응 필요"…수출 부진 우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한국은행 창립 69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미래경제 김석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와 반도체 경기 부진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12일 한은 창립 69주년 기념사에서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경제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에 이같은 발언은 그동안 기준금리 인하에 명확히 선을 그어온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약 3년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반도체 중심의 수출 부진 장기화 등 대내외로 악화된 경제 여건에 대응하기 위해서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달 3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5월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기자회견을 열었을 당시만 해도 '아직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연 1.75%로 인상한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4차례 연속 동결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이날 기념사에서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나타내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와 반도체 경기 회복 지연 등을 꼽으며 한국 경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고 판단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이 총재의 금리인하 부담감을 줄인 요인으로 거론된다. 한국의 기준금리(연 1.75%)가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기준금리(연 2.25~2.50%)보다 낮은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더 내리면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자금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연속 감소 행진인 수출 등 최근 발표되는 주요 경제지표는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일 한은이 발표한 4월 경상수지는 6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2012년 5월 이후 약 7년만에 흑자행진에서 멈춰섰다. 상품수지 흑자가 56억7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달(96억2000만달러)보다 39억5000만달러나 줄어드는 등 근본적인 원인은 수출 부진이었다.

지난해부터 홀로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반도체 업황 부진은 우리 경제 상황에 큰 우려 요소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총재의 발언이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한 것이 맞다고 입을 모으면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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