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부터 3월 4일까지…신작 100여점과 작업 과정 담은 영상 전시

금강화개, 197x216cm, Ink on paper, 2018.(사진=가나아트 제공)

[미래경제 김미정 기자] 가나문화재단은 한국화의 대가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 1945- ) 화백의 개인전을 인사아트센터에서 전관(제4전시장, 제6전시장 제외)에 걸쳐 3월 4일까지 연다.

가나아트의 첫번째 전속작가인 박대성은 수묵화를 이어가는 작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한국 미술계에서 수묵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일구어 낸 작가다.

박대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 한다는 점에서 겸재에서 소정과 청전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회자된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림이 좋았던 작가는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걷는다.

개자원화전을 보며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던 작가는 집안어른의 소개로 18세 때부터 서정묵의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의 조언을 받으며 공부한다.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미술대전에서 1965년 첫 입선을 시작으로 6년 연속 입상한다. 1974년 1년간의 대만 유학기간 중 작가는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그림을 매일 두점씩 볼 수 있는 참관증을 받았고 이때의 공부는 그의 작업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동양화단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효설 曉雪, 235x756cm, Ink on paper, 2018.(사진=가나아트 제공)

박대성은 1994년 현대미술을 탐구하기 위해 뉴욕 소호에서 1년간 거주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2000년대부터 박대성의 작품에 나타나는 추상성에 영향을 미쳤다. 뉴욕에서 현대미술을 접하며 오히려 우리 전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는 이후 ‘서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1999년 경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작가는 이러한 ‘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김생, 김정희, 모택동, 갑골종정 등의 작품을 통해 ‘서’의 연마에 매진함으로써 2000년 이후 작업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여전히 자연풍경은 가장 주된 작업의 소재로 다루어지나 이 시기를 지나면서 작품은 물상을 표하는 선 자체가 힘찬 기(氣)를 내뿜게 되고 필획의 힘이 돋보이는 화면은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느낌과 긴장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조형성은 그가 찾은 한국화의 해답이기도 하다.

시(詩)·서(書)·화(畵)의 일치를 근간으로 하는 문인화적 사상과는 달리 박대성은 ‘서’를 ‘글’이라기보다는 사물의 형태와 의미를 나타내는 ‘디자인’으로서 접근한다. 따라서 그는 ‘서’의 ‘선’에 주목하여 사물을 최대한 절제해 표현하는 반추상적인 표현방법을 작품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자연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한 화면에서 공간을 재구성하고 왜곡함으로써 성격이나 의미를 전달하고 사물의 본질을 찾는데 주력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폭이 5m에 이르는 대작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긴장감과 힘찬 기운을 쏟아내는데 이는 크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운생동이 활약하는 현대적 수묵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나아트 측은 “전시에 박대성의 서예작품과 함께 경주 불국사 시리즈 등 신작 100여점이 선보이며 작가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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