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센터 ‘황재형 개인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 14일부터 열어

둔덕고개, 2017년 9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28x259cm.(사진=가나아트 제공)

[미래경제 김미정 기자] 정통 리얼리즘에 입각해 본연의 조형언어를 창조하고 민중 미술 1세대의 기틀을 마련한 황재형(黄在亨, 1952~)의 개인전 ‘심만 개의 머리카락’전이 가나아트센터에서 14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0년 이후 7년만에 열리는 가나아트의 개인전이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황재형 작가는 1981년 중앙대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이종구, 송창 등과 함께 조직한 ‘임술년(壬戌年)’의 창립 동인으로 활동했다.

‘임술년’은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모노크롬 경향에서 탈피해 모순된 사회 현실에 저항하는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한 민중 미술 운동이다. 작가는 이러한 임술년의 정신을 이어받아 태백 탄광촌에 들어가 광부로서 노동자의 생활 현장을 생생하게 겪으며 그 곳의 풍광을 밀도 있게 형상화하는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리얼리즘을 기조로 한 황재형의 작품은 대상의 단순한 재현(Representation)에서 벗어나 존재의 진정성, 물리적 사실성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탄광촌 지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즉 삶의 흔적이 진하게 스며든 일상의 오브제 활용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물감을 구입하지 못해 석탄과 황토, 백토 등을 개서 발라 삶의 현장성을 살리고 붓을 쓰지 않고 나이프로 강한 터치를 가해 거친 삶과 노동의 현장을 나타냈다. 작가는 이처럼 시대정신을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조형언어에 대해 고민하고 현실 비판을 통해 사회 변화를 촉구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 제목인 ‘십만 개의 머리카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가진 정신성과 물질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 기인한다. 태백지역 미용실에서 직접 모은 머리카락을 활용한 신작들은 우리네 ‘삶’을 더욱 화폭에 가까이 끌어들인다.

민중미술 1세대 작가이자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황재형(66)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강원 태백 지역 미용실에서 모은 머리카락을 접착제로 붙여 완성한 '아직도 가야할 땅이 남아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작가가 이 같은 재료에 주목한 것은 생명과 에너지를 가진 머리카락에 개개인이 가진 삶의 이야기와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수십여 년 동안 강원도 태백에서 작품 활동을 해오며 지하 막장에서 헌신해온 탄광촌 광부와 그 가족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을 캔버스에 담은 작가지만 그들의 참된 삶을 온전히 담을 수 없었기에 미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들의 영혼이 담겨있는 머리카락을 이용한 작업은 작가 자신에게도 위로를 주었고 붓과 색채를 이용한 작업보다 더욱 생생한 표현력과 힘을 얻게 됐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흑연으로 그린 회화 작품들도 선보인다. 문지를수록 더욱 빛이 나는 흑연 고유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연의 장엄함과 신비로움을 담아냈다. 민족의 시원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바이칼 호수를 만난 작가는 2500만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바이칼 호수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를 생각했다.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차가우며 가장 크고, 가장 깊은 담수호다. 작가는 이 호수를 ‘거대한 침묵’ 속에 한민족의 뿌리가 담긴, 호수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흑연을 통해 영롱하게 표현했다.

한편 황재형은 1980년 중앙미술대전에 ‘황지 330’이라는 작품으로 화단에 데뷔한 이후 40여 년간 한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작업을 전개해왔으며 2016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가나아트 측은 “다양한 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는 황재형의 이번 전시를 통해 진정한 리얼리즘의 미학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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