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통한 간접고용 시스템 깊게 자리…‘유명무실’ 정책에 비정규직만 ‘눈물’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가운데, 전자·통신업계에 깊숙이 뿌리 내린 간접고용 행태가 개선될지 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11조 2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미래경제 김하은 기자]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가운데, 전자·통신업계에 깊숙이 뿌리 내린 간접고용 행태가 개선될지 업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통상 전자·통신업체들의 비정규직 고용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회사 협력업체(하청업체) 등을 통한 간접고용 형태로 인력을 활용하는 비중은 꽤 높다. 간접고용은 대기업이 직접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외주를 준 협력업체가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16일 국내 주요 전자·통신업체의 고용현황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0.3~3.6% 수준으로 다소 낮았다. 이중 삼성전자, LG전자의 경우 전체 직원 수 대비 비정규직 비율이 각각 0.7%, 1.2%였다. SK하이닉스의 비정규직 비율은 0.3%에 불과했다.

통신업계 역시 전체 직원 수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통신사마다 차이가 있었다. SK텔레콤은 3.6%, KT는 2.5%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지만, LG유플러스는 22.6%로 크게 높았다.

이처럼 전자·통신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타 업종에 비해 낮은 데는 이유가 있다.

업계 특성상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일반화돼있기 때문이다. 주요 업무에는 정규 사원을 뽑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는 외주에 맡기고 있다. 특히 공장 자동화 생산으로 최소 인력만 뽑는 것도 비정규직 비율이 낮은 이유로 꼽힌다.

○ 정부, 대기업이 중간 자회사 설립, 직접 고용형태 추구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 중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협력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다.

실제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는 90여곳이며, 소속 인원만 약 6000명에 이른다. LG전자도 다르지 않다. 이 회사의 협력업체 수는 100여곳으로 추산되며, 약 4000명의 인력이 포진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72개 협력업체를 통해 2500여명의 직원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협력업체에 속한 서비스센터 인력도 일감을 잃게 되는 점이 이 정책의 어폐”라며 “대기업은 해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은 대기업 정직원과 동일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로 고용 불안정에 시달려야 한다.

일각에선 대기업은 간접고용 돼 있는 근로자까지 감안하면 비정규직 수준의 일자리 비중이 결고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을 많이 고용하는 기업에 부담금을 물리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전자·통신 대기업들이 간접고용을 통해 자사 내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을 최소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정부는 대기업이 중간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직원들을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LG유플러스는 72개 협력업체를 통해 2500여명의 직원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사진=뉴스1)

○ 기업 간 경영 환경 고려해 획일적 ‘직접고용’ 지양해야

실제 일부 전자·통신 업체들은 이 같은 시스템을 구성하고 진행 중에 있다.

2015년 KT는 KT 남·북부지사를 설립해 위탁업무를 수행한 협력사 직원 4000여명을 신규 법인의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같은 해 SK텔레콤도 고객센터 운영회사 2개사, 기지국 유지보수 1개사로 총 3개의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사 비정규직 직원 8000여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SK브로드밴드가 중간 자회사를 설립해 협력업체 직원 5000여명 이상을 정규직 채용할 것으로 밝혔다.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들이 중간에서 통신사로부터 수수료나 지원금을 받아 챙기는 경우가 많아 중간 이윤을 남기는 협력업체를 없애고 직접 자회사 직원으로 관리할 경우 이 비용을 매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도 자회사 설립을 통해 통신사가 직접 고용하는 것이 직원들의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통신업계의 경우 실적이 낮은 협력업체는 통신사 본사와의 위탁계약 갱신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협력사 간 경쟁이 불가피한 구조다. 이 때문에 협력업체는 피고용자인 직원들에게 실적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비스 품질은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급한 불부터 끄자'는 획일적인 정책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에선 기업이 외주를 쓰는 것을 비용 절감과 정규직을 늘리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시각이 많다”면서 “각 기업의 경영 상황과 환경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위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직접 고용 획일적 접근법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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