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경제팀 김석 기자.

때아닌 대머리독수리가 한국에 출현했다. 대머리독수리는 벌쳐(Vulture)로 주로 시체를 뜯어 먹고 사는 날짐승이다.

대다수 육식 동물이 살아 있는 동물을 포식하지만 대머리독수리는 살아 있는 것은 물론 죽은 시체까지 먹는다. 탐욕의 대명사다. 이런 날짐승이 한국에 출현했다니 반가운 손님일리 없다.

대머리독수리를 꺼낸 것은 바로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벌쳐 헤지펀드로 알려지고 있어서다. 그래서 이 싸움을 취약한 지배구조를 가진 한국기업과 벌쳐와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삼성물산을 포함해 국내 기업은 지배구조가 약한 측면이 크다. 경영권 승계 작업도 진행되고 있지만 경영권 지분이 워낙 복잡하게 계열사들과 묶여있다 보니 정작 재벌 3세들이 보유한 지배회사 지분은 10%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마지막으로 예상되는 삼성물산에 대한 그룹지배력은 약하다. 삼성그룹이 지닌 삼성물산의 지분율은 19% 정도다. 그나마도 자사주가 5.76% 가량 됐다.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하면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6.5%를 소유하게 돼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때마침 엘리엇이라는 대머리독수리가 여기에 매복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 1대0.35을 문제 삼았다. 즉, 삼성물산 3주가 제일모직 1주와 교환되는 삼성물산의 순자산은 30조원이고 제일모직의 순자산은 5조원이어서 삼성물산한테 불리하게 산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의명분일 뿐 법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의 자본시장법에선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고 있다. 합병비율은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이 삼성물산보다 3배 크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셈이다.

그럼 엘리엇이 국내 사정에 어두워서 나온 실수였을까.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벌쳐는 탐욕스럽기 그지없다. 엘리엇은 이 싸움을 가능한 확대하면서 삼성전자의 이사회 자리까지 노릴 공산이 크다. 기업이 죽든 말든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렇게 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 엘리엇은 아르헨티나를 1000억달러 규모의 국가 부도 사태로 몰고 갔을 때도 그랬다. 가나에 정박한 군함을 차압할 정도로 위세 등등했지만 실제로 아르헨티나 정부가 꼼짝 못했던 건 아르헨티나 국민들 때문이었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국민을 볼모로 잡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몰아세웠다.

벌써 엘리엇은 지분 5% 이상인 점을 활용해 삼성전자의 이사회 참여를 요청한다고 한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1등 기업 삼성이 이 정도인데 국내 다른 기업은 어떠할까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취약한 지배구조도 기업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삼성물산에 투자한 소액 투자자들은 또 어떠할까. 삼성과 엘리엇의 전면전을 활용해 이득을 보던 투기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면 삼성물산의 주가가 곤두박질 칠 수 있어서다.

이래저래 대머리독수리의 출현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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