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6일 여야 합의로 일부 자구를 수정해 정부에 전날(15일) 이송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을 시사하면서 정국이 폭풍의 눈 속에 들어선 모습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로 돌아올 경우 청와대와 새누리당과의 당청 갈등, 새누리당 내 친박·비박 갈등, 나아가 입법부와 행정부의 갈등으로 전화할 가능성도 높다.

가뜩이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과 동요가 극심한 상황에서 민심을 외면한 '그들만의 싸움'이라는 비판도 높아질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에 관한 질문에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딱 한 글자 고쳤던데, 그렇다면 우리 입장이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국회는 전날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 규정 중 '수정·변경을 요구한다'는 구절에서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해 정부로 보냈다.

청와대가 개정 국회법이 정부의 행정입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다며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히자 이런 우려를 줄이기 위해 야당을 설득해 강제성을 완화한 것이다.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다시 손대기 위해 야당을 설득하느라 정의화 국회의장은 통상 본회의 통과 후 1주일이나 10일이면 정부에 보내던 법안을 17일만에야 보낼 수 있었다.

이런 정치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서 '딱 한 글자 고쳤다'는 불쾌한 반응이 나오면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아지자 청와대와 여의도 주변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의 공포 또는 거부권 행사 가능 시한이 오는 30일이라는 점과 법제처의 서류처리 일정 등을 고려해 23일에 열리는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거부권 행사 여부를 밝힐 가능성이 높다.

일단 새누리당 비박(非박근혜) 지도부는 청와대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은 삼간 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의 부정적 반응에 대한 질문에 "내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그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청와대 반응에 대한 질문에 "그것에 대해선 일절 대응을 안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도 "'만약'을 전제로 한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고 입을 닫았다.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 이송한 뒤 청와대와 따로 연락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는 앞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청와대와의 물밑 협의를 통해 정부에 보낸 '수정' 국회법의 의미를 설득,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새누리당 내에서는 친박계를 중심으로 여야 협상을 이끈 유 원내대표를 향한 책임론이 다시 불거지면서 극심한 내홍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돌아온 국회법의 재의결 여부나 당론 투표 등 처리 방향을 놓고도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승자 없는 패자 부활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청와대가 거부권 행사를 재차 시사한 것을 비판하면서 여야 합의로 보낸 국회법 개정안 중재안을 수용할 것을 압박했다.

문재인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 노력을 그렇게 (무시하겠나), 뭐 존중하지 않겠나"라며 국회법 개정안 수용을 촉구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저는 대통령에게 공을 넘겼다. 더이상 소모적 논쟁과 정쟁은 민생에 도움이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와 국회의장까지 중재안을 낸 합의안에 대해 존중하라"고 밝혔다.

국회부의장인 이석현 의원은 "청와대 비서실은 국회법 중재안에 '요구'를 '요청'으로 글자 한 자 바꾼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데 '요구'와 '요청'은 호랑이와 고양이처럼 현저히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은 국회법이 국회에 돌아오면 이를 야당뿐만 아니라 입법부 전체에 대한 무시로 간주, '대통령의 오만'을 부각시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 의장과 여당을 상대로 본회의 재의결을 촉구해 대통령과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거부권 행사로 돌아온 법안은 재적의원(현재 298명) 과반(150명)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법률로 확정된다.

새누리당은 당내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지만 정 의장은 야당의 재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받아들일 뜻을 밝히고 있다.

특히 전날 정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자구를 수정한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에 송부하면서 한 목소리로 "수정안은 강제성과 위헌 소지가 없다"며 청와대에 법안 수용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입법부와 행정부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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