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9일(현지시간) 오전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다.(사진=뉴스1)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9일(현지시간) 오전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나선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2차 세계 대전에서 숨진 미국인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또 "(전쟁 시기에) 우리의 행위는 아시아 제 국민들에게 고통을 줬다"며 "통절한 반성"을 표명했지만 종군 위안부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심이 담긴 사과는 이번에도 없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일본과 일본 국민들을 대표해 이전의 대전(大戰)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미국 국민들의 영혼에 깊은 존경과 영원한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처럼 사과는 없었다. 한국 국민들을 비롯해 미 하원 의원 25명 등이 사과를 촉구했지만 아베 총리의 연설에는 과거사에 대한 사과가 담기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없었다.

아베 총리는 "전후 일본은 이전의 대전에 대한 통절한 반성(deep remorse)을 가슴에 새겼다"며 "우리의 행동이 아시아 제 국민에게 고통을 준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이러한 생각은 역대 총리들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연설 후반부에 2차 대전에 대한 직접적 언급없이 "무력분쟁에서는 항상 여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았다. 우리 시대에선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세상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는 종군 위안부를 인신 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로 규정하면서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종전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전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인신 매매의 희생자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던 위안부 여성들을 생각하면 깊은 고통을 느낀다. 이것은 내가 역대 총리들과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다"며 "우리는 21세기를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지는 않는 시대로 만들려고 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충격적이며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일본계 미국인인 혼다 의원은 아베 총리는 "일제 시대를 관통했던 시스템적인 잔악행위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모면하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혼다 의원의 초청으로 하원 본회의장에서 아베 총리의 연설을 지켜봤다.

미국 정치 매체 '더 힐'에 따르면 주디 추(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고통스러웠던 과거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본의 책임"을 외면했다면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더 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과 관련해 지난 수년 동안 논란을 촉발시켰던 아베 총리는 이날에도 사과는 없이 이 문제를 넌지시 언급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한국과 중국에서 성노예가 돼야 했던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는 "애매하게 언급만했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연설에 앞서 워싱턴DC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있는 2차 세계대전 국립기념비를 방문했다고 언급하며 "역사란, 돌이킬 수 없는 가혹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70년 전 끔찍한 반목이 남긴 잿더미에서 미일 동맹이 등장했다면서 "치열하게 싸웠던 적이 친구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는 "이것을 역사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부를까요"라고 반문했다.

미 의회에서 일본 총리가 연설하는 것은 요시다 시게루 (吉田茂·1954 년), 기시 노부스케 (佐藤信介·1957 년), 이케다 하야토 (池田勇人·1961 년)에 이어 4 번째로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아베 총리가 처음이다. 아베 총리는 '희망의 동맹으로'란 제목으로 약 45분 동안 영어로 연설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전후 미일 동맹에 대해 "이 길이 일본을 성장시키고 번영시켰다. 그리고 지금도 이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미국의 리밸런싱(rebalancing·재구조화) 정책에 대한 지지를 재차 표명했다. 해양 진출을 활발하게 하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법의 지배가 관철하는 평화의 바다로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일 동맹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선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 장기적인 안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일미 간의 협상은 출구가 가시 거리에 있다. 미국과 일본의 리더십에서 TPP를 함께 이룩하자"고 했다.

아베 총리는 안보 관련 법안에 대해서는 "전후 최초의 개혁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법안의 성립을 올 여름까지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자위대의 해외 활동이 확산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국제 협조주의에 기초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일본의 기치로 하겠다는 생각을 나타냈다.

(미래경제 /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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